지독한 여름이 8월이 다 지나도록 계속된다. 올해는 윤달이 들어 추석이 10월에 있고, 삼복과 입추와 처서가 지났는데도 낮 기온은 33도를 넘나들며 내려 갈 줄 모른다. 가을은 아직 올 생각이 없는지 지독한 여름은 계속되고 있다. 9월 첫 주 한국 경마의 가장 큰 축제인 ‘코리아컵’과 ‘코리아스프린트’ 국제대회가 코앞에 와 있다. 이런 날씨가 일주일 더 계속된다면 가을 축제로 펼쳐지긴 아예 그른 것 같다. 예년과 달리 이번 두 대회에 번번이 우승과 준우승을 몽땅 쓸어간 일본 경주마가 한 마리 더 출전해 세 마리다. 3착까지 다 쓸어갈까 걱정이다. 우리 경주마는 3착이라도 챙기려고 급급해 지는 것은 아닌지.

지난 23일 토요일 제2경주(1200m)에서 임기원 기수가 ‘신라의파이터’를 몰고 멋진 우승을 거둔다. 거의 1년간 길고 고통스러웠던 부상 공백을 깨며 우승을 거둬 많은 팬의 박수를 받으며 건강한 복귀의 축포를 쏘아 올렸다. 물론 ‘신라의파이터’는 출전마 11마리 중 가장 높은 인기를 끌며 출전했다. 출발 직후 초반전에는 뚜렷한 단독 선행마가 없이 여러 마리가 뒤엉키는 난타전으로 경주가 이어졌다. 빠른 초반 출발을 보였던 터라 빠른 페이스의 경주가 펼쳐졌다. 종반 선두권 네 마리 중 외곽에서 경주를 풀어갔던 임기원 기수는 인코스에서 우승을 향해 선두를 달렸던 ‘베스트드림’을 결승선상에서 역습으로 덜미를 잡았다. 코 차이로 짜릿한 역전승을 챙겼다. 1년간의 공백기를 극복하고 복귀전에 우승을 거두기란 결코 쉽지 않은 놀라운 성과겠다.

지난 2024년 9월 29일 제1경주에서 임기원 기수가 기승했던 ‘컴플리트터프’가 넘어지면서 뒤따르던 세 마리의 경주마가 연달아 낙마하는 큰 사고가 발생했었다. 당시 서울경마장은 팬들의 놀람과 탄식으로 가득 찼었고, 두 마리의 경주마가 안락사 되는 아픔까지 있었다. 함께 사고를 당했던 정정희, 조재로 기수는 임기원 기수에 비해 경미한 부상이라 비교적 짧은 회복 기간을 거쳐서 이미 복귀했으나 임기원, 신형철 두 기수는 훨씬 깊은 부상으로 긴 재활의 시간을 오래 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오랜 공백을 마치고 복귀전에서 임기원 기수는 멋진 우승을 거두며 건재함을 알렸다. 박수를 받을 만하겠다.

임기원 기수는 학창시절 프로축구선수를 꿈꿨으나 작은 체격 때문에 꿈으로 남기고, 고등학교 은사님의 권유로 기수후보생 모집 포스터를 접하게 되었고, 1999년 문세영, 최범현 기수 등과 함께 기수후보생 시험에 합격했다. 개인사정으로 후보생 생활을 중도에 그만두고 군복무를 마친 후 만난 후보생시절 그를 지도했었던 교관의 권유로 부산경마장의 관리사로 경주마와의 인연을 놓지 않는다. 관리사로 보낸 10년이란 세월은 기수후보생 동기였던 20기의 기수들은 이미 서울경마장 최고의 기수들로 한국 경마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를 개의치 않고 꿈을 관리사에서 기수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그는 2013년 한참 어린 송재철, 조한별 등과 함께 31기 기수로 데뷔한다. 20기 동기들보다 14년이나 뒤늦게 기수로 새롭게 출발한 것이다. 서울경마장 데뷔 8개월 만인 2024년이 끝날 무렵 34승을 올려 월 승률 15%의 놀라운 기록을 내며 팬들과 경마관계자들의 주목을 받는다. 괴물 신인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는 10년간 마필관리사로의 경험을 통해 경주마의 성격과 컨디션을 파악하는 데 탁월했고, 특히 성질이 까다로운 악벽마를 다루는 데 능숙하여 조교사와 마주들은 그에게 문제마를 맡기는데 서슴치 않았다. 명기수가 명마를 탄생시킨다는 경마장 명언대로 그는 ‘청담도끼’라는 악벽마를 길들여 함께 대상경주에 출전해 우승을 아홉 개나 챙기는 기염을 토했다. 언제나 침착하고 전략적인 전개를 장점으로 출전 횟수는 욕심내지 않되 기승하면 경주마의 컨디션을 최대한 살려 승률을 높여갔다. 심지어 인기마를 타더라도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을 뿐, 특별히 대단한 건 아니다”라며 늘 겸손한 자세까지 보였다.

특히 경주마의 순발력을 스타트에서 최대한 발휘하는 능력이 발군이라 와이어 투 와이어 전개로 시원한 우승을 거머쥐어 팬들의 응원과 박수와 신뢰를 쌓아왔다. 경주마와의 호흡이 완벽해야 가능한 기승술이라 쉽지 않은 기승술이겠다. 그는 신문지상과의 인터뷰에서 “성적에 대한 조급함을 내려놓고, 꾸준하고 안정적인 주행을 선보이겠다.”며 “단순히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팬들에게 신뢰받는 기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김귀배, 박태종 같은 선배 기수들을 롤모델로 삼고 뒤를 따르기 위해 꾸준히 그리고 철저히 자기관리를 강조하는 기수임에 분명하다. 이번 오랜 공백을 거치며 복귀전에서 성공하면서 여실히 그것을 증명했다.

지난 주 네 마리에 기승해 단 한 마리와 우승을 하나 챙겼으니 승률, 복승률, 연승률까지 각기 25%로 새 출발을 했다. 이번 주에도 아직은 그에게 고삐가 많이 주어지지 않아 토요일 2경주에 9에브리타임과 일요일 1경주 2화이트로맨스 각일 딱 한 마리씩의 고삐를 잡지만, 하루에 두 개의 대상경주에 우승을 거둔 저력을 서서히 살려 간다면 그는 곧 바로 선두권 대열에 가세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의 건재를 확인하러 이번 주에도 서울경마장을 찾아 마음껏 응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