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라이트퀸이 9월 21일 제주특별자치도지사배에서 우승했다. 부산 말이다. 서울에서 열린 대상경주에서 부산 말이 우승했다는데 아무도 관심 없다. 쿨하다.

경마중계자도 이젠 서울 말, 부산 말 구분을 않는다. 당연히 부산 말이니까.  

그간 서울과 부산 오픈경주에서 그래도 단거리 경주, 암말 경주에서는 우승을 다툴 만 했다. 최근 이런 경주마저 부산에 참패하고 있는데도 서울마주협회, 서울 조교사는 쿨하다.

2013년 이후 역대 연도 대표마, 최우수 국내산마는 부산말로 도배했다. 

최고의 경주라는 대통령배에서도 2010년부터 부산말이 지배하고 있다. 좋은 말이 나오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 주기적 흐름이 아니다. 이 정도면 서울 경마장에는 아무리 좋은 말이 들어와도 부산말을 이길 수 없는 구조가 고착되었다고 판단하는 게 맞다.   

왜 부산 말과 서울 말, 구체적으로 조교사의  역량이 이처럼 차이가 날까? 왜 이렇게 구조적 열세가 고착되었을까? 

서울 조교사에게 물어보면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대략 57 가지쯤 된다. 질문할 때마다 한 가지씩 새로 찾아낸다. 

부산은 직선주로가 서울보다 길어서 말의 호흡이 좋다, 관리사를 직접 고용해서 조교사가 원하는 대로 부려먹을 수 있다, 부산 말은 훈련을 많이 해서 수명이 짧다, 부산 말은 훈련 때문에 부상마가 많다, 부산은 서울보다 기온이 따뜻하다, 부산은 마방에서 주로까지 동선이 짧다........ 

부산 조교사에게 물으면 답이 다르다. 가장 많은 답이 

잘 모르겠어요. 

이다. 이어지는 답은 제각각이다. 

서울이 더 환경이 좋지 않나요?, 서울 기수들이 수준이 더 낫지 않나요? 훈련하는 관리사들은 기량이 서울이 더 좋을 건데요?, 서울은 교육이나 관리체계가 더 좋잖아요? 서울이 더 마필자원이 풍부하지 않을까요?, 서울의 수의사나 시설이 더 좋지 않나요?.........

​어떤 나라가 특정 분야에 왜 경쟁력을 가졌나, 또는 어떤 팀의 성적이 왜 좋은가를 분석하는 일은 어렵다. 우승팀은 뭐든 승리의 원인으로 꼽는다. 강압적이고 독재적 감독이 카리스마로 포장되고, 지멋대로인 팀원의 행동을 자유로운 분위기로 미화한다. 열악한 환경은 승부를 향한 집념을 키웠다고 설명한다. 

하위팀은 모든 요소가 부진요인이 된다. 주도면밀하고 정밀한 감독의 분석과 작전은 융통성 없는 독단으로, 규율과 체계가 잡힌 선수단 분위기는 관료적이고 창의성을 죽이는 분위기로, 훌륭한 운동시설과 복지를 나태의 원인으로 지적한다. 

우승과 부진에 대한 원인분석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 

​자메이카나 에디오피아가 육상에 강한 이유가 있을까? 시설, 인구, 지원체계, 훈련 환경이 미국이나 선진국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세네갈에서 뛰어난 축구 선수가 배출되는 이유? 

찾기 어렵다. 맨땅에서  염소 오줌통으로 축구한다. 브라질의 유소년 축구환경은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열악하다. 

부산 말이 서울 말에 비해 강한 이유를 환경에서 찾는 서울 조교사의 넋두리는 얼빠진 소리라는 말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진화가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지 않으면 그대로 머물거나 퇴보한다는 사실이다. 19세기 진화론은 발표 이후 수많은 검증에서 살아남은 이론이다. 임팔라는 살아남기 위해 빨리 달렸고, 빠른 임팔라를 잡아먹지 않으면 멸종하기 때문에 치타는 더 빠르게 달린다. 천적이 없으면 임팔라는 힘들게 뛰지 않고 새는 힘들게 날지 않는다. 

​부산 경마장에서는 경주 상금을 조교사에게 직접 지불한다. 조교사는 관리사를 직접 고용하고 상금에서 급여를 지불한다. 조교사가 상금을 벌지 못하면? 관리사 봉급을 주지 못한다. 급여가 체불되면 노동부에 고발당한다. 빚을 내서라고 관리사 급여를 줘야 한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게 봉급날이다. 봉급 주고 돌아서면 봉급날이라 한다. 상금 못 벌면 빚 내서 관리사 봉급 주고, 자신도 빚내서 생활하고 자식들 키워야 한다. 일년 1억 적자는 순식간이다. 

마사회나 마주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 폐업한 조교사가 부산 경마장에는 4명이다. 부산 경마장 조교사는 이 모습을 지켜봤다. 한라산 들개를 닮아갈 수 밖에 없다. 며칠 먹이 못 찾으면, 눈에 보이는 먹이 잡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  

관리사 봉급이 부담되니 관리사 급여체계도 다르다. 상금 많이 벌 때는 많이 줘도 된다. 상금이 적을 때도 같은 급여주려면 부담이 크다. 급여체계를 상금에 연동하게 만들면 서로가 좋다. 관리사 입장에서도 조교사가 폐업해서 일자리 잃는 것 보다 낫다. 상금에 따라 급여가 다르니 관리사 자세가 다르다. 들개가 된다. 

부산 경마장은 조교사가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생존할 수없는 진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서울 경마장은 다르다. (혹시 사실과 다른 부분 있으면 알려주기 바란다)

조교사협회가 관리사를 모두 고용한다. 그리곤 파견 형식으로 각 마방에 배치한다. 관리사 입장에서 고용주는 조교사협회고, 업무 지시만 소속된 조교사에게 받는다. 급여 또한 조교사협회가 제공한다. 소속된 마방의 성적이 어찌되던, 마방이 문을 닫던 말던 관리사의 급여와 복지체계는 변동이 없다. 소속 마방의 성적에 따라 매우 적은 비율의 보상이 있다. 무사할 수 있는 정도다. 관리사의 말을 빌면 - 기분이 조금 좋고 나쁜 정도다. 경쟁력 향상을 위한 진화의 동기는 아예 없다.

마사회에서는 상금 중 조교사 몫과 관리사 몫을 개별 조교사에게 지급하지만, 조교협회에서 일괄해서 모두 모아 관리한다. 이 돈 중 관리사 몫을 정해진 임금체계에 따라 관리하고 지급한다. 조교사 몫 상금 또한 바로 조교사에게 지급하지 않는다. 상당 부분을 공제해서 자녀학자금, 복지자금으로 공동 관리하고 나머지를 조교사에게 지급한다. 서울 조교사는 성적이 나쁘도 사는 덴 어려움이 없다. 관리사 봉급 부담이 없고, 자신의 수입이 조금 줄어들 뿐이다. 자녀학자금 주고, 복지제도가 있으니 생존에 위협 받을 일 없다. 관리비에서 조금 아끼면 견딜 만 하다. 서울 경마장에는 자발적으로 마방 폐업한 조교사가 없다. (확인이 필요한 일이지만, 서울 조교사가 외국의 조교사 지망생에게 서울의 제도를 설명했더니 '와 이렇게 좋은 환경을 가진 경마장이 있어요? 그럼 조교사는 걱정이 없네?' 했다는 말도 있다.)

서울은 진화가 멈춘 공간이다. 마사회에 꼬리만 흔들면 맛있는 음식이 생기는 푸들이 사는 곳이다. 힘들게 경쟁할 필요가 없다. '이대로!'를 외치며 '어제도 오늘처럼, 내일도 오늘처럼'을 외치는 공간이다. 

조교사가 마방에 없어도, 경마장에 오지 않아도 돌아가는 공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들개와 푸들 중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사갈비 던져놓고 싸워서 이기는 놈이 먹으라고 한다. 이게 서울과 부산 오픈 경주다. 

​진화가 지배하는 공간, 진화가 멈춘 공간을 누가 만들었을까?

2005년 부산경남 경마장을 개장하면서 다른 체계를 도입했다. 그 결과가 오늘 부산 말의 압도, 서울 말의 부진마 세상이다. 서울마주협회, 기수, 경마팬의 책임 아니다. 

무슨 책임? 

경마팬은 서울 말과 부산 말이 치열하게 경주하는 박진감 넘치는 경주를 보지 못한다. 서울 마주와 기수는 는 서울경마장에 배정된 마주 몫 상금, 기수 몫 상금을 부산에게 빼앗긴다. 정당하게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픈 경주는 상금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서울 마주협회와 기수협회는 마사회에 요구해야 한다. 

서울경마장과 부산경남경마장의 운영체계를 진화가 작동하는 체계로 만들든, 작동하지 않는 체계로 만들든 같은 체계로 운영하도록 바꾸어야 한다. 법적, 정책적 측면에서 이 방안은 실행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 상금 책정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실제 오픈 경주 결과에서도 확인한다. 오픈 경주 상금은 모두 부산이 가져간다. 현실이다. 서울과 부산의 경쟁력 차이는 마사회가 만들었다. 

2026년 상금협상에서 오픈 경주 상금은 부산경마장 상금으로 간주하고 서울경마장 마주상금과 기수상금을 책정해야 한다. 나는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한다.